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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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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삼성 그룹삼성스포츠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2군
주요 인물구단주·대표이사 유정근단장 이종열감독 박진만2군 감독 정대현주장 구자욱
경기장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주요 문서선수단등번호유니폼마스코트 블레오사건·사고왕조암흑기기롯삼한
관련 문서삼적화여름성이마양채최박조원수박차JOKKA곤규엽굴비즈김헌곤 유니버스삼나쌩 · 삼상바 클럽프랜차이즈 스타
라이벌전88고속도로 씨리즈클래식 씨리즈싸대기 매치재계 라이벌 시리즈
영구 결번10 양준혁22 이만수36 이승엽
최종 우승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19852002200520062011201220132014
현재 시즌삼성 라이온즈/2024년
팬덤 정보응원가(구단 · 선수)|삼갤삼튜브사자 사랑방사자후김상헌(응원단장)허니크루치어리더대구아재
지역 연고경북고대구고상원고포철고경주고강릉고설악고도개고예일메디텍고
틀 문서
역대 시즌역대 감독역대 주장역대 1차지명응원단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42주년)
법인 설립1982년 3월 5일(42주년)
법인명㈜삼성라이온즈
상장 유무비상장 기업
기업 규모대기업
구단 사무실대구광역시 수성구 야구전설로 1 (연호동)[1]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14 (역삼동)[2]
구단명삼성 라이온즈 (1982~ )
모기업제일기획[3]
연고지대구광역시 (1982~ )
경상북도 (1982~1999)[4]
구단주유정근
대표이사
단장 이종열
감독70 박진만
주장5 구자욱
영구 결번10 양준혁 22 이만수36 이승엽
홈구장 변천
제1 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82~2015)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16~ / 24,000석)[5]
제2 구장
포항 야구장 (2012~ / 12,000석)
2군 구장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1995~ )
키트 스폰서 언더아머
링크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스토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공식 애플리케이션
파일:App Store 아이콘.svg | 파일:Google Play 아이콘.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최종 우승 (8회)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1985년[6]2002년2005년2006년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
2011년2012년2013년2014년
페넌트 레이스 우승 (9회)[7]
단일 리그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전·후기 리그
1982년 후기, 1984년 전기, 1985년 통합[8], 1986년 후기, 1987년 통합[9]
양대 리그 1999년 매직
2011년
포스트 시즌 진출 (29회)[10]
한국시리즈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플레이오프1986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3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4년, 2008년, 2010년, 2021년
준플레이오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7년, 2008년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0.706
1985년 110경기 77승 1무 32패
최저 승률0.396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최다 승88승
2015년 144경기 88승 56패
최다 패84패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최다 관중851,417명
2016년[1]
최소 관중177,774명
1988년[2][3]
최고 계약5년 120억 원[4]
2022년 구자욱

[1]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1,825명.[2]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3,292명.[3]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예외[4] 연봉 총액 90억원, 옵션 30억원
1. 개요
1.1. 지배 구조
2. 구단 디자인
2.1. 엠블럼
3. 홈구장
4. 역사
5. 팬
5.1. 인기
5.2. 팬덤 성향
5.3. 유명 라이온즈 팬
6. 응원
6.1. 응원단
6.2. 응원가
7. 라이벌전
8. 역대 선수 및 인물
8.1. 영구 결번
8.3. 역대 구단주
8.4. 역대 사장(대표이사)
8.5. 역대 단장
8.6. 역대 감독
8.7. 역대 주장
8.8. 역대 선수 명단
8.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9. 역대 기록
9.1. 팀 성적
9.1.1. 암흑기
9.1.2. 팀 전력
9.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9.2. 개인 성적
9.2.1. 통산
9.2.2. 단일시즌
9.2.3. 타이틀 홀더
9.2.3.1. 타자
9.2.3.2. 투수
10. 지역 연고 학교
11. 논란 및 사건사고
12. 이야깃거리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2023년 캐치프레이즈.svg

삼성그룹 산하의 제일기획이 운영하는 KBO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년 구단 중 하나이며 연고지는 대구광역시다.

KBO 리그 원년 구단 중 유이하게 연고지·모기업·구단명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구단으로[11]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7회), 정규 시즌 최다 우승(9회)[12], 정규 시즌 최다 연속 우승(5회 연속, 2011~2015),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회 연속, 2011~2014), 포스트 시즌 최다 진출(29회), 포스트 시즌 최다 연속 진출(12회 연속, 1997~2008)[13]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문 구단이다.

공식적으로 삼성은 KBO리그를 8번 우승하였으며 이 중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것은 7번인데, 85년에 삼성이 전·후기 리그를 통합우승했기 때문이다. 이후 KBO팬들 사이에서 페넌트레이스 즉 리그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면 '통합우승' 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통합우승이라는 용어는 85년 전·후기 리그를 우승한 삼성 라이온즈에게 최초로 불려지던 수식어이다.

페넌트레이스 우승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통합우승을 기준으로, 삼성은 최다 통합우승팀이다. 그래서 KBO 최고 명문팀을 논할 때, 항상 기아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가 가지고 있는 기록적인 애매함 때문에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KBO에서 인정하는 우승팀은 한국시리즈 우승팀이라, 이를 기준으로는 해태 타이거즈를 전신으로 가지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이지만, 기아 타이거즈가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암흑기가 꽤 길었고, 삼성 라이온즈는 2015년 전까지 가을야구를 안해본 역사가 거의 없었고 꾸준하게 성적을 냈으며, 통합우승 기록으로는 1위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야구에서의 명문팀은 삼성과 기아로 양분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KBO가 단일리그인데도 불구하고 시리즈를 치루기 때문인데[14] 이는 동시에 페넌트레이스를 우승하고도 막상 한국시리즈에서 업셋 우승을 최다로 내준 삼성의 업보이기도 하다.

상징색은 파란색, 빨강색-하늘색 (연파란색, 1984년부터 1994년까지)[15]-파란색 (1995년부터 2015년까지)[16]-파란색, 빨간색 (2016년부터). 마스코트는 블레오, 레니, 핑크레오, 라온이다. 합쳐서 블레오 패밀리라고 부른다.


1.1. 지배 구조[편집]


제일기획 67.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17]

14.5% + 대구광역시 2.5%

삼성스포츠단 중 최초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 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다.[18] 제일기획에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의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대로 특정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범 삼성가가 지분을 각각 나눠 가졌다.

제일기획 인수 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은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로 분산되어 있었다. 삼성가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상징적 의미로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 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CJ그룹, 신세계그룹까지 포함한 범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 2021년 신세계그룹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신세계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 소유 여부도 논란이 됐는데, KBO 규약에 따르면 한 구단이 다른 구단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O는 이마트와 신세계가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이에 문제가 없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고, 신세계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매각치 않고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관련기사[19]

2015년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업계 1위이자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내의 전자나 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지분 67.5%(12만 9,000주)[20]를 6억 7천만 원[21]에 사들여,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

제일기획 인수 후에는 제일기획, 신세계, CJ제일제당, 이건희가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이건희가 가지고 있던 2.5%의 지분을 대구광역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줄었다는 말들이 있는데 돈성 시절처럼 리그 내 넘사벽급으로 펑펑 써대진 못 하니 과거보다 줄은 건 맞지만 2017~2019년까지 3년간 FA 계약 총액만 200억 원 넘게 투자했으며[22], 구단 운영비도 10구단 중 다섯 번째로 많이 지출한다. ## 상술했지만 제일기획에서 운영비 전액을 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 방침이 바뀐 것이다.


2. 구단 디자인[편집]



2.1. 엠블럼[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엠블럼 변천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23][24]파일: 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1982~1988
1989~1994
1995~2007
2008~

2.2. 유니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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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삼성 라이온즈/유니폼#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편집]



제2 홈구장을 쓰는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과 제2 홈구장 모두 2010년대에 지은 구장을 쓰는[27] 구단이다. 자세한 구장의 내용은 문서 참조.


4.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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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삼성 라이온즈/역사#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팬[편집]



5.1. 인기[편집]


파일:라팍 관중 1.jpg
파일:라팍 관중 2.jpg
파일:라팍 관중 3.jpg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이고 리그 출범 후 가을야구 탈락은 몇 번 해봤을 지라도 꼴찌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전통의 강팀으로 화끈한 타격을 시그니처 이미지로 삼았던 팀이었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해태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28][29]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의 최대 절정기로 꼽히던 1995년에는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썼음에도 총 관중수가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30]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에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정도인데, 이는 90년대 13,000석이었던 시민야구장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31]관련기사.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4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승엽이 떠나자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32]으로 인해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 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그러나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으며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민 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 인기를 점차 회복하였다. 삼성 왕조가 건재하던 2015년까지는 명실상부한 KBO 최고 인기 팀이었다. 삼성왕조가 무너진 2016년부터 시작된 암흑기로 인해 2020년까지는 구단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삼성이 다시 1위 싸움을 하자 폭발적으로 인기가 상승하였다. 2021년 최다관중 1위, 네이버 스포츠 응원 천만, 2021년 올스타전 줄투표 등 가히, KBO 최고 인기팀이라고 볼 수 있다. 2022년 현재, 긴 암흑기로 인해 팬덤의 결속력이 왕조시절보다도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신규 팬 유입 역시 최신구장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김상헌 응원단장의 노력 등으로 인해 넓어지고 있다.

팬층은 대구와 제2연고지인 포항, 2군 소재지인 경산[33]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과 인접한 경주, 구미, 김천, 칠곡, 영천, 청도 역시 삼성 팬덤이 상당한 편이다. 대구에서 거리가 먼 경북 북부 지역인 안동, 문경, 영주, 봉화, 울진, 군위, 의성 등도 삼성 라이온즈 팬덤이 압도적이라 대구·경북 전 지역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즉, 대경권 그 자체다.

또한, 같은 경상도인 부산, 울산, 경남에서도 상당한 팬덤이 있다. 주로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부산, 경남 쪽에 정착하게 된 대구경북 출신들이 많다.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사직 야구장에서 열리면 3루는 삼성의 팬들이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원 NC 파크 경기때도 3루에 상당히 많은 삼성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남도에 삼성중공업 사업이 있는 거제를 포함해서 거창, 합천, 창녕, 밀양은 경남[34]이지만 대구랑 가까워서 이쪽도 삼성의 팬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강원도 영동지역도 삼성의 1차지명 연고지이기에 어느정도 팬덤이 있다.

수도권 역시 상당한 팬덤이 구축되어있다. 특히 서울과 수원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의 팬덤은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첫 번째 부류는 출신지나 연고가 대구경북 출신의 수도권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향의 팀을 응원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삼성스포츠단의 팬 출신들이 형제 응원을 보내고 있다. 서울만 해도 삼성그룹 사원 중심으로 전사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추가로 현 KBO 10번째 팀으로 kt wiz의 연고인 수원시와 인근의 용인시에도 팬층이 단단하다. 이 연고지들은 삼성그룹 주요 사업장이 있다. 수원에는 삼성전자 수원 본사와 K 리그와 AFC 최고 인기클럽으로 형제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현재는 서울로 연고이전했으나 전 수원 연고였던 한국농구의 대표 농구명가라 불리우는 삼성전자가 모토였던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과 현재는 용인이지만 과거 수원 연고였던 여자 농구의 명가라 불리우는 삼성생명이 모토였던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여자농구단의 영향으로 인해 수원만 아니라 인근의 용인과 화성에도 팬덤이 존재하고 있다. 추가로 용인에는 삼성의 놀이공원인 삼성물산에버랜드가 있다. 이외 대전 연고지만 형제 배구단인 삼성화재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도 야구로 이어진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는 과거 2002년부터 시작되며 2005년과 2006년 그리고 최근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절정이었던 삼성 왕조 시절 호성적에 팬이 된 부류다.

파일:갤럽 총정리.jpg

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KBO 리그 인기 팀이라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시청률 또한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팀이다.199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1년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2000년대는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팬들이 떨어져 나가 인기가 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35] 1990년대에는 1995년에 홈 경기 총 관중수 62만 3970명으로 최고점을 찍는 등 내내 50만 명 선을 유지했으나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 2002년에 24만 7698명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9만 58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이후 내내 30만 명 선을 유지하다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 45만 5246명으로 40만 명 선을 회복했고 류중일 감독 취임 이후에는 45만 1483명의 2013년을 제외하고 50만명 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를 회복했다. 출처

베이징 뉴비들이 유입되던 2000년대 후반에는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였으나, 2011년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36],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 결정적으로 삼성의 관중동원 미진이 구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히 2016년 라이온즈 파크가 새로 지어지면서 관중동원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다.[37] 2016년 시즌 초반, 삼성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구장 바로 다음가는 관중동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9일 기준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 팀의 부진으로 관중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기며 총 85만 1천여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구단에서 예측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

2016년 암흑기의 시작으로 기존 올드 팬층[38]이 굉장히 많이 이탈하였으나[39] 이후 젊은 층의 신규 팬층이 유입되며 팬 수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암흑기로 인하여 팬층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었으나 2021년 시즌 마지막에 미끄러져 3위를 하기 전까지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던 호성적으로 인하여 올드 팬층이 다시 야구를 찾아보게 되고 신규 팬층도 유입되며 2021시즌 동안에는 사실상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단이었다. 특히나 2021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2003년에 이어 삼성 선수들이 1위를 독식했고, 네이버 스포츠 중계에서는 1000만 응원 돌파라는 미친 신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21년 시즌에는 KBO 최다 관중 동원 구단이 되었다. 이후 다시 침체기를 겪은 2022년부터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2023시즌에는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상위권의 높은 홈 직관 동원을 뽐내며 확고한 인기구단임을 입증했고,[40][41] 성적이 좋아지기만 한다면 리그 최상급의 인기구단이 될 자질을 갖춘 코어 팬덤이 있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2019년 단 한번 한화 이글스에 3위 자리를 빼앗긴 적 말고는 40년이 넘는 KBO 리그 역사상 단 한번도 3위 밑으로 내려가본 적 없으며 1위를 차지한 횟수도 가장 많은 확고한 최상위권 인기팀이다.원정팀 관중까지 홈 관중으로 집계해서 인기팀인 척 하는 모 팀과는 비교하는게 굴욕일 정도.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중복투표가 가능한 올스타가 아닌 야구장 티켓 현장 투표만으로 2003년 올스타전에서 2루수 안경현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을 전부 삼성 선수로 싹쓸이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현실 기둥

5.2. 팬덤 성향[편집]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42]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43]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팬서비스는 전반적으로 시민구장 시절에 비해 양호해졌지만 반대로 성적이 하락하자 올드 팬들 사이에선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최근 모든 KBO구단들이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매년 사인회와 같은 팬서비스성 행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드팬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년부터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전보단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44]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45]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오재일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46]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 시대에선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47]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젊은 팬들이나 여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48]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지원은 해주지만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2021년에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호성적을 기록하자 기존 팬층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까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로 찾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2022년에 와서는 2021년의 호성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심각한 부진은 물론이고 경기력도 굉장히 저질스러워지면서 삼성 팬들마저 삼성야구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아졌다.[49] 부진해진 성적과는 별개로 22시즌 관중 순위 3위를 기록하였고[50], 홈구장 직관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성적에 관중수가 어느정도 비례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약간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 응원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아진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

2022년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올드팬들과 라이트팬으로 나뉜다. 성적이 더 나빠지기 시작한 2023년부터는 이들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올드 팬덤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이며[51], 홍준학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팬들도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라이트 팬덤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팬덤이다. 야구장을 가는 목적도 이기는 경기를 보는 것 보다는 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들은 특정 선수 개인 팬덤의 경향이 강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경기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 골수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52] 물론 서로의 스타일 차이를 인정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존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를 조장하던 홍준학 단장이 퇴진하고 이종열이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리빌딩이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팬덤 분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5.3. 유명 라이온즈 팬[편집]


이름에 ★표시가 된 사람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출신. 다른 구단들하곤 다르게 고위 인사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경북 출신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로 대한민국의 정계, 재계, 법조계, 군 장성에는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많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런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육군 쪽은 퇴역과 예비역포함 사단장급 이상 장성들 중 출신학교 비율보면 경북고등학교가 가장 높다.


6. 응원[편집]


야구 인기가 절정이었고, 왕조로 불리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응원으로 리그를 주도하는 구단은 아니었다. 시민야구장 시절만해도 응원가를 잘 따라하지 않는 아저씨팬들이 3루 내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응원가의 퀄리티도 영 좋지 않아서 성적에 비해 응원 문화는 뒤떨어진 편이었다.

그러다가 2013 시즌부터 김상헌 응원단장이 응원가를 재녹음하면서 응원 문화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고, 2011~2014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구단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응원석에도 젊은 팬들이 유입되어 응원가를 신나게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가 '응원을 잘 하는 팀'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2016년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이전과 2017년의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좁고 불편했던 시민야구장에서 쾌적하고 팬 친화적인 라팍으로 홈 구장이 옮겨지면서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게 되었고,[62] 응원석인 '블루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배정하면서 평일에도 뜨거운 응원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또한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기존의 응원가를 대부분 쓰지 못하게 되자, 김상헌 응원단장이 직접 음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허니크루라는 이름으로 선수와 팀 응원가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삼성 팬은 물론 타 구단 팬들에게도 호평을 얻으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63] 2023년 현재 라팍은 블루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잔디석 관중들도 응원가를 다 따라 부르는 응원 맛집이 되었다.

6.1. 응원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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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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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2024 시즌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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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의 이름은 '블루팅커스'이며, 홈 경기에서는 6명, 원정 경기에서는 4명씩 나오며, 2020 시즌과 2021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 경기에서도 4명씩 나오기도 했다. 삼성 구단의 이벤트 대행사인 놀레벤트에 소속되어 있고, 대구경북 출신이 대다수이며,[64] 야구 외 종목의 응원 구단들도 TK 지역에 몰려있다.[65] 2023년에는 멤버 전원이 대경권 출신으로 채워졌다.[66] 전용 인스타그램에 경기의 라인업이 올라온다.

6.2. 응원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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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라이벌전[편집]


원년부터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전자업계 라이벌인 LG 트윈스와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로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를 시작으로 같은 경상도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88고속도로 시리즈,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에 이어 과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라이벌리 등등이 대표적이며 00년대말과 10년대초에는 SK 와이번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16, 17시즌 암흑기동안 2년 연속 9위를 찍으면서 KBO 막내 구단인 kt wiz와 라이벌이 생겼다. 그것도 두시즌 10위한 kt에게 우위를 보였으면 모를까 두시즌 내내 8승 8패를 주고받으며 이제는 서글프게도 라이벌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18년에는 블루윙즈 더비가[67]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이다. 최근 4년간 두 팀 모두 가을야구를 못갔으며, 특히 kt는 창단 이후 가을야구를 못갔다. 여러모로 웃픈 더비.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완전히 호구잡히며 통산 전적에서 승패수가 비슷해졌다. 2021년에는 kt와 삼성이 무려 선두경쟁을 하며 다른 방향의 라이벌리가 되고 있다![68]

새롭게 형성될 라이벌리도 있다. 범 삼성가 계열 기업인 신세계그룹이 2021년 SK 와이번스의 후신인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이른바 '삼성가 시리즈'가 생기기 때문이다.[69] 다만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7.1. 88고속도로 시리즈[편집]


파일: 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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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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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클래식 시리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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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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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싸대기 매치[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두산 베어스
{{{+1 {{{#ffffff 'Doosan Be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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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재계 라이벌 시리즈[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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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대 선수 및 인물[편집]



8.1. 영구 결번[편집]


파일:이만수크보40.png
파일:KBO 40주년 특집 양준혁 일러스트.png
파일:이승엽크보40.png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이만수
(2003.06.16.)
양준혁
(2010.09.19.)
이승엽
(2017.10.03.)



4개의 영구 결번을 가진 한화 이글스 다음으로 LG 트윈스와 함께 KBO 리그 소속구단 중 두번째로 많은 3개의 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전통적인 타격의 팀답게 리그 올타임급 타자 3명이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았다.[70]

파일:삼성영구결번.png

22번은 뛰어난 성적과 손꼽히는 인기로 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선수인 리그 올타임급 포수 이만수의 번호이며, 1997년 은퇴[71] 후 2003년에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영구 결번.

10번은 역시 리그 올타임급 타자인 양준혁의 번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적[72]을 남긴지라 영구 결번이 기정사실이었고, 실제로도 삼성 라이온즈의 두번째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10번은 양준혁 이전 팀 레전드인 장효조의 번호였는데, 양준혁은 10번이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고, 팬들 또한 양준혁과 장효조의 공동 영구 결번을 염원한다. 영구 결번까진 아니지만 현재 구단에서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았다.

36번은 팀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이승엽의 번호로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결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으며,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8.1.1. No.22 이만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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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22
이만수
李萬洙 | Lee Man-Soo
프로입단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1982~1997 / 16시즌 / KBO)
영구 결번2003년 6월 16일

역대 기록
경기타수타율출루율장타율OPS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삼진wRC+WAR
14494310.296.388.519.9071276193725286162552554490159.0
(4위)
65.29


8.1.2. No.10 양준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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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10
양준혁
梁埈赫 | Yang Joon-Hyuk
프로입단1993년 1차 지명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993~1998, 2002~2010 / 18시즌 / KBO)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1999)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000~2001)
영구 결번2010년 9월 19일

역대 기록
경기타수타율출루율장타율OPS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삼진wRC+WAR
2135
(4위)
7332
(4위)
.316.421
(2위)
.529.9502318
(2위)
458
(5위)
253511389
(4위)
1299
(2위)
1931278
(1위)
910160.0
(3위)
87.22
(2위)


8.1.3. No.36 이승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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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36
이승엽
李承燁 | Lee Seung-yuop
프로입단1995년 연고구단 자유계약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995~2003, 2012~2017 / 15시즌 / KBO)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엠블럼.svg 치바 롯데 마린즈
(2004~2005)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2006~2010).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 오릭스 버팔로즈
(2011 / 8시즌 / NPB)
영구 결번식2017년 10월 3일

역대 기록
경기타수타율출루율장타율OPS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볼넷삼진wRC+WAR
19067132
(5위)
.302.389.572
(1위)
.9602156 464
(2위)
28467
(1위)
1498
(2위)
1355
(1위)
579531344150.472.21
(4위)

8.2. 삼성의 스타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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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8.3. 역대 구단주[편집]


대수이름재임 기간비고
1이건희1982~2001삼성그룹 회장[73]
대행김정순1995당시 제일제당 사장
대행안덕기1996~1997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대행이종기[74]1998~1999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삼성 라이온즈 2대 사장
대행이대원2000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대행현명관2001당시 삼성물산 회장
22002
3이수빈2003~2017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4임대기2017~2020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5원기찬2020~2023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6유정근2023~현재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8.4. 역대 사장(대표이사)[편집]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대표이사의 직급은 부사장 ~ 사장급이다. 임대기부터는 사장과 구단주 겸직.

대수이름재임 기간비고
1이수빈1982~1983년 4월 26일당시 제일제당 사장
2이종기1983년 4월 27일~1988당시 중앙일보 사장
3편송언1989~1990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4안덕기1991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5김흥민1992~1994삼성물산 전무
6이광진1995~1996삼성중공업 총괄전무
7전수신[75]1997~1999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8한행수2000~2000년 7월 9일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9신필렬2000년 7월 10일~2004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76]
10김응용2005~2010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11김인2011~2015삼성SDS 사장
12김동환2016~2017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13임대기2018~2020제일기획 대표이사[77]
14원기찬2020~2023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15유정근2023~현재제일기획 사장


8.5. 역대 단장[편집]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단장의 직급은 상무보 ~ 상무 정도이다.

대수이름재임 기간비고
1김동영1982동방생명 관리이사
2김삼용[78]1983~1983년 4월 27일한국실업야구 선수(투수) 출신[79]
3노진호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체육부장[80]
4이달종1984~1985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5윤경헌1986~1989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6조복래1990~1992사무국장에서 승진
7지용하1993~1994중앙개발 이사
8김대훤[81]1995~1996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9김종만[82]1997~1999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10김재하2000~2010제일모직 이사[83]
11송삼봉2011~2014. 8. 16부단장[84]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12안현호2014. 8. 16~2016삼성스포츠 부장, 최초 사원 출신 단장[85]
13홍준학2017~2023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14이종열2024~구단 역사상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86] 단장

8.6. 역대 감독[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
[ 펼치기 · 접기 ]

1대2대3대4대5대
서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이충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영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6)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6대
7대
8대9대10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2)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1995)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1997)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1999)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11대
12대
13대14대15대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4)
선동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11)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6)
김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허삼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2022)
15대16대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감독대행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파일:2022박진만감독.jpg
삼성 라이온즈 No.70
박진만
朴鎭萬 / Park Jin-Man
(2022.10.18.~)

대수이름재임 기간비고
1서영무1982~198369승 1무 40패 (0.633)
2이충남[87]198331승 3무 36패 (0.462)
3김영덕1984~1986202승 2무 114패 (0.643)
4박영길1987~1988120승 2무 94패 (0.560)
5정동진1989~1990123승 7무 110패 (0.527)
6김성근1991~1992137승 3무 112패 (0.550)
7우용득1993~1995193승 13무 172패 (0.528)
8백인천1996~1997120승 10무 120패[88](0.500)
9서정환1998~1999139승 4무 115패 (0.547)
10김용희200069승 5무 59패[89](0.524)
11김응용2001~2004312승 16무 204패 (0.604)
12선동열2005~2010454승 13무 380패 (0.544)
13류중일2011~2016465승 12무 333패 (0.583)
14김한수2017~2019183승 10무 239패 (0.434)
15허삼영2020~2022178승 16무 188패 (0.486)
16박진만2023~61승 1무 82패 (0.427)
2023년

삼성 라이온즈가 99688 이전까지는 꾸준히 강호로 평가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들의 평가는 과반수가 좋지 않은 편이다. 김성근 이후의 감독들은 혹평받은 인물들이 호평받은 인물들보다 많다.[90] 물론 야구감독 자체가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직업임은 사실이지만, 삼성은 독특하게도 성적을 매우 잘 내면서도 감독이 크게 혹평받고, 나아가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서도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삼성의 성적이 99688 이전까지는 좋았을 뿐더러 99688 이전까지는 그냥 강한 팀으로, 99688시기부터는 못하지만 조용히 못해서 딱히 관심은 없는 팀으로 여겨졌기에 삼성 외 타 구단 팬덤은 삼성 감독이 혹평받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삼성이 오랫동안 강호였던만큼 당연히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들도 존재한다. 김영덕, 백인천, 김응용, 류중일 등이 삼성 라이온즈 팬덤에게 지지받고 큰 인상을 남긴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태업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백인천이 삼성에서는 제대로 감독직을 수행했었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91]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92]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의 선두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인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93]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94] 더티 플레이나 빈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95]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였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96]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97]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KIA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그러나 KIA 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98]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KIA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99]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KIA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홍준학 체제에서 부임한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은 전부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100] 이 시기는 성적도 좋지 않고 리빌딩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다만, 이 세 감독 위에서 팀을 운영하던 홍준학이 리빌딩을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성향임을 참작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으나, 저 세 감독이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8.7. 역대 주장[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8.8. 역대 선수 명단[편집]





8.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편집]



연도이름상대
1982황규봉對MBC
1983이선희對해태
1984김시진對삼미
1985김일융對해태
1986김시진對청보
1987김훈기對해태
1988전용권對해태
1989진동한對롯데
1990김상엽對태평양
1991김성길對롯데
1992김상엽對롯데
1993김상엽對쌍방울
1994김태한對롯데
1995김태한對LG
1996김태한對OB
1997전병호對현대
1998조계현對롯데
1999김상진對한화
2000노장진對SK
2001임창용對한화
2002임창용對LG
2003엘비라對두산
2004호지스對롯데
2005배영수對롯데
2006배영수對롯데
2007브라운對두산
2008배영수對KIA
2009윤성환對LG
2010윤성환對LG
2011차우찬對KIA
2012차우찬對LG
2013배영수對두산
2014윤성환對KIA
2015피가로對SK
2016차우찬對두산
2017페트릭對KIA
2018윤성환對두산
2019맥과이어對NC
2020백정현對NC
2021뷰캐넌對키움
2022뷰캐넌對KT
2023뷰캐넌對NC
(당시 모두1선발)

8.10. 역대 선수단등번호[편집]



9. 역대 기록[편집]



9.1. 팀 성적[편집]


우승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성적
연도 정규시즌 순위 포스트시즌 최종 순위 경기 승률
삼성 라이온즈
1982전기 2위 / 6팀
후기 1위 / 6팀
KS 1-4(1무) 준우승(OB)준우승80540260.675
1983전기 5위 / 6팀
후기 2위 / 6팀
진출 실패4위100464500.479
1984전기 1위 / 6팀
후기 5위 / 6팀
KS 3-4 준우승(롯데)준우승100550450.550
1985전기 1위 / 6팀
후기 1위 / 6팀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101]우승110771320.706
1986전기 1위 / 7팀
후기 4위 / 7팀
KS 1-4 준우승(해태)준우승108701370.654
1987전기 1위 / 7팀
후기 1위 / 7팀[102]
KS 0-4 준우승(해태)준우승108640440.593
1988전기 5위 / 7팀
후기 2위 / 7팀
PO 0-3 탈락(빙그레)3위108562500.528
19894위 / 7팀준PO 1-2 탈락(태평양)4위120575580.496
19904위 / 7팀KS 0-4 준우승(LG)준우승120662520.558
19913위 / 8팀PO 1-3 탈락(빙그레)3위126701550.560
19924위 / 8팀준PO 0-2 탈락(롯데)4위126672570.540
19932위 / 8팀KS 2-4(1무) 준우승(해태)준우승126735480.599
19945위 / 8팀진출 실패5위126602640.484
삼성 라이온즈
19955위 / 8팀진출 실패5위126606600.500
19966위 / 8팀진출 실패6위126545670.448
19974위 / 8팀PO 2-3 탈락(LG)4위126667530.552
19982위 / 8팀PO 2-3 탈락(LG)3위126662580.532
1999매직 1위 / 4팀PO 3-4 탈락(롯데)4위132732570.562
2000드림 3위 / 4팀PO 0-4 탈락(현대)3위133695590.539
20011위 / 8팀KS 2-4 준우승(두산)준우승133810520.609
20021위 / 8팀KS 4-2 우승(LG)우승133824470.636
20033위 / 8팀준PO 0-2 탈락(SK)4위133764530.589
20042위 / 8팀KS 2-4(3무) 준우승(현대)준우승133738520.584
20051위 / 8팀KS 4-0 우승(두산)우승126744480.607
20061위 / 8팀KS 4-1(1무) 우승(한화)우승126733500.593
20074위 / 8팀준PO 1-2 탈락(한화)4위126624600.508
20084위 / 8팀PO 2-4 탈락(두산)4위126650610.516
20095위 / 8팀진출 실패5위133640690.481
20102위 / 8팀KS 0-4 준우승(SK)준우승133792520.594
20111위 / 8팀KS 4-1 우승(SK)우승133794500.612
20121위 / 8팀KS 4-2 우승(SK)우승133802510.611
20131위 / 9팀KS 4-3 우승(두산)우승128752510.595
20141위 / 9팀KS 4-2 우승(넥센)우승128783470.624
20151위 / 10팀KS 1-4 준우승(두산)준우승144880560.611
20169위 / 10팀진출 실패9위144651780.455
20179위 / 10팀진출 실패9위144555840.396
20186위 / 10팀진출 실패6위144684720.486
20198위 / 10팀진출 실패8위144601830.420
20208위 / 10팀진출 실패8위144645750.460
20212위 / 10팀PO 0-2 탈락(두산)3위144769590.563
20227위 / 10팀진출 실패7위144662760.465
20238위 / 10팀진출 실패8위144611820.427
KBO 리그 통산 42시즌V85347284712023900.545

KBO 리그 구단들 중 손에 꼽는 통산 성적을 기록하였다. 원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KBO 리그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정규시즌 최하위 기록이 없다[103]. 2023 시즌 6월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창단 첫 꼴찌의 불명예가 잠정적으로 확정된 상황인듯 했으나 7월 이후 좋은 승률을 거두고 키움이 이정후의 시즌아웃 부상 이후 사실상 리빌딩 및 탱킹 체제에 들어가면서 기어코 꼴찌를 면했다. 본격적으로 암흑기에 들어간 2016년 이후에도 최하위는 안했다. 2016과 2017년은 10위 중 9위를 기록해 버텨내었다. [104] [105] 삼성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하게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룬 구단이다. KIA 타이거즈가 해태 시절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있지만, 이 중에 통합 우승은 1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페넌트레이스 연속 우승은 5연속이었으나 통합 우승이 좌절된 것은 도박 파동이 한몫 했다고 봐야 된다.



통산 승리 1위[106],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107],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통산 가을야구 진출 횟수 1위(29회)[108]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09]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110]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한 이미지라면, 라이온즈는 소수의 예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2016시즌부터는 삼성도 2009시즌 이후의 기복있는 KIA 타이거즈보다도 근소하게 못한 성적을 내며[111] 똑같은 신세가 되었다.

라팍으로 홈을 옮기기 이전의 삼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승했을 때 '음, 이번 시즌 좀 잘했구나'라는 분위기[112]였고, 4위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굴욕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만약 5위 이하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면 해당 시즌은 바로 삼성의 흑역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16년 이전까지 34시즌 동안 팬들에게 그나마 암흑기로 불렸던 1994년, 1995년, 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으로 총 4번이 전부다.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포스트시즌 탈락은 1983년 단 한 번뿐이니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단 6회 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러한 역대 팀 평균 성적을 감안한다면 2015시즌부터 5위 팀 또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와일드카드전 진출 또한 삼성에 있어서는 굴욕이라고 할 만 하겠지만, 2016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구단 사상 최장기간 암흑기가 도래하면서 팬들의 가을야구에 대한 갈증은 계속 심해지고 있었다.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준우승 10회로 최다 준우승 팀이다.[113]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한국시리즈 우승 7회로 총 8회.[114] 일부[115]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116]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데,[117]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이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한을 풀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다.

다만 이런 영광스러운 날이 있기까지에는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10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118]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년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LG 트윈스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119]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120]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 2009년과 2016~18년 단 일곱번. 이는 1990년 플레이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1위였던 LG 트윈스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21]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6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2010년~2015년)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기록 경신까지 7년 남았으나 2016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년으로 멈췄다.[122]

2015년 정규시즌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관련 또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바로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이다. 이전까지의 최다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은 SK 와이번스의 6연속(2007년~2012년)으로, 2015년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역시 6연속(2010년~2015년)으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는 5연속 진출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공동 1위에 올라섰는데, 두산 베어스가 2021년에 삼성을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7연속(2015년~2021년)으로 삼성의 기록은 2위가 되었다. 4위는 해태 타이거즈의 1986년~1989년 4연속.

2011~2015년 정규시즌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정규시즌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3~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등의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5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정규시즌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9.1.1. 암흑기[편집]


전통의 강팀 이미지가 강한 삼성에게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3년간의 순위를 가리킨다. 삼성의 성적이 워낙 좋다보니 타 팀이 보기엔 그저 엄살로 보이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3년간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1996년 당시 기준으로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순위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고, 이후 2011년 한국시리즈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삼성 왕조를 이룩했다.

1994년부터 삼성이 3년간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주된 원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을 이끈 주전 멤버들의 노쇠화였다. 1993년 준우승 당시에도 김성래, 류중일, 이만수, 이종두 등 베터랑들 대다수가 30대를 훌쩍 넘긴 노장 축에 속했다. 삼성 입장에서는 분명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대구와 경북지역 아마야구의 침체로 인해 삼성에는 쓸만한 신예가 드물었다. 실제로 1991년 이후 삼성의 1차 지명선수 명단을 보면 이영재(1991년), 감병훈(1994년), 안윤호(1995년), 황성관(1997년), 정성열(1999년)등 1군에서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1996년부터 도입된 고졸 우선지명에도 김헌수, 김성훈, 권영철(1996년) 설재호, 황영구(1997년), 이준민(1998년), 이성훈(1999년) 등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운드에는 쓸만한 선수가 아예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삼성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 최용희, 최창양 등을 영입했지만 그마저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일설에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대단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이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 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스스로의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고 시인했다. 다시 말해 본인의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업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이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던 다섯 팀[123]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여담으로 이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해에 6위를 찍었다는 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은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급격한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차근차근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124]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그 외 일각에서는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9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고 2차 암흑기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선감독 재임 시절엔 일단 우승도 두 번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타팀 팬들 입장에서는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 물론 삼성 시절 선감독의 논란 많은 행적과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 좌절, 양준혁의 급작스러운 은퇴 등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감독 재임 시기가 2차 암흑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추세였다. [125]

이후 2011년 류중일 감독 선임 이후에는 삼성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5년 이후 고작 1년 후인 2016년2017년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낮은 최종 순위였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 삼성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인해 구단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2016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제대로 된 암흑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2016년 9위, 2017년 9위를 기록하고, 2018년 시즌 막판에는 혹시나 하는 3년만의 가을야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암흑기 탈출에 성공하나 했으나, 시즌 막판부터 지난해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오며 5위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삼성은 기아에 밀려 6위라는 순위에 만족해야 했으며, 2019년, 2020년에도 8위에 그치면서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126]

강팀의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이전까지의 3년짜리 암흑기와는 다르게 2010년대 후반기의 암흑기는 객관적으로도 명백히 하위권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좋든 나쁘든 구단 역사상 팀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뀐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왕조 시절의 멤버가 하나둘 떠나면서 신인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본의 아니게 팬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나마 이 시기의 위안거리가 있다면,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위험했던 낡은 구장을 벗어나 여러모로 쾌적한 새 구장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과 제대로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대가로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이는 2021년 암흑기에서 잠시 벗어나는 데에 알게 모르게 기반으로 작용해주었다.




9.1.2. 팀 전력[편집]


전력 순위가 중간 이상인 경우, 굵은 글씨
삼성 라이온즈 역대 팀 전력 (스탯티즈 팀 WAR 기준)
연도 정규시즌 승률 정규시즌 순위 투수 전력 순위 타자 전력 순위
19820.675통합 2/621.111/618.612/6
19830.479통합 4/615.084/623.311/6
19840.550통합 2/617.602/624.071/6
19850.706통합 1/625.231/629.971/6
19860.654통합 1/716.335/730/541/7
19870.593통합 1/714.546/737/971/7
19880.528통합 4/713.525/726.252/7
19890.4964/712.037/728.762/7
19900.5584/714.336/727.232/7
19910.5603/818.285/829.693/8
19920.5404/817.537/826.534/8
19930.5992/821.553/838.881/8
19940.4845/821.415/827.192/8
19950.5005/817.636/823.084/8
19960.4486/814.207/823.564/8
19970.5524/817.726/838.921/8
19980.5322/816.216/828.202/8
19990.562통합 3/824.113/826.994/8
20000.539통합 3/823.365/827.093/8
20010.6091/825.571/827.891/8
20020.6361/825.541/838.221/8
20030.5893/822.773/837.222/8
20040.5842/827.091/826.733/8
20050.6061/826.242/826.132/8
20060.5931/823.474/823.654/8
20070.5084/822.854/820.977/8
20080.5164/819.635/821.645/8
20090.4815/820.305/826.272/8
20100.5942/828.952/828.843/8
20110.6121/829.591/825.184/8
20120.6111/828.681/833.801/8
20130.5951/924.312/929.912/9
20140.6241/928.701/929.922/9
20150.6111/1014.068/1033.761/10
20160.4559/1012.558/1022.214/10
20170.3969/106.7410/1016.818/10
20180.4866/1018.084/1019.897/10
20190.4208/1011.4010/1017.278/10
20200.4608/1019.064/1015.788/10
20210.5632/1019.524/1021.877/10
20220.4657/1013.547/1020.576/10






9.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편집]


두산 베어스1982 KS: 1승 1무 4패
1986 PO: 3승 2패
2001 KS: 2승 4패
2004 PO: 3승 1패
2005 KS: 4승
2008 PO: 2승 4패
2010 PO: 3승 2패
2013 KS: 4승 3패
2015 KS: 1승 4패
2021 PO: 2패
PO 3승 2패
KS 2승 3패

개별 경기 합계: 23승 1무 26패
롯데 자이언츠1984 KS: 3승 4패
1991 준PO: 2승 1무 1패
1992 준PO: 2패
1999 PO: 3승 4패
2000 준PO: 2승 1패
2008 준PO: 3승
준PO 3승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13승 1무 12패
KIA 타이거즈1986 KS: 1승 4패
1987 KS: 4패
1990 PO: 3승
1993 KS: 2승 1무 4패
PO 1승
KS 3패

개별 경기 합계: 6승 1무 12패
한화 이글스1988 PO: 3패
1990 준PO: 2승
1991 PO: 1승 3패
2006 KS: 4승 1무 1패
2007 준PO: 1승 2패
준PO 1승 1패
PO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8승 1무 9패
현대 유니콘스1989 준PO: 1승 2패
2000 PO: 4패
2004 KS: 2승 3무 4패
준PO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3승 3무 10패
LG 트윈스1990 KS: 4패
1993 PO: 3승 2패
1997 PO: 2승 3패
1998 PO: 1승 3패
2002 KS: 4승 2패
PO 1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10승 14패
쌍방울 레이더스1997 준PO: 2승 1패준PO 1승
개별 경기 합계: 2승 1패
SSG 랜더스2003 준PO: 2패
2010 KS: 4패
2011 KS: 4승 1패
2012 KS: 4승 2패
준PO 1패
KS 2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9패
키움 히어로즈2014 KS: 4승 2패KS 1승
개별 경기 합계: 4승 2패




9.2. 개인 성적[편집]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성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9.2.1. 통산[편집]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통산 1위.

삼성 라이온즈 역대 투수
부문이름기록삼성 소속 시즌
등판경기오승환668경기2005~2013
2019~현재
선발 등판윤성환305경기2004~2020
완투김시진61경기1983~1988
완봉김시진14경기1983~1988
평균자책점김시진2.731983~1988
승리윤성환135승2004~2020
패전윤성환106패2004~2020
세이브오승환400세이브 [129]2005~2013
2019~현재
홀드안지만177홀드2002~2016
이닝윤성환1915이닝2004~2020
피안타윤성환2042개2004~2020
피홈런윤성환212개2004~2020
탈삼진윤성환1357개2004~2020
볼넷배영수630개2000~2014
몸에 맞는 공임창용108개1999~2007
2014~201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자
부문이름기록소속 시즌
출장경기박한이2127경기2001~2019
타율구자욱.3152012~현재
출루율양준혁.4191993~1998
2002~2010
장타율이승엽.5721995~2003
2012~2017
타석박한이8712타석2001~2019
타수박한이7392타수2001~2019
안타박한이2174개2001~2019
2루타이승엽464개1995~2003
2012~2017
3루타구자욱55개2012~현재
홈런이승엽467개1995~2003
2012~2017
타점이승엽1498타점1995~2003
2012~2017
득점이승엽1355득점1995~2003
2012~2017
도루박해민318개2012~2021
사사구양준혁1134개1993~1998
2002~2010
볼넷양준혁1043개1993~1998
2002~2010
몸에 맞는 공김한수148개1994~2007
삼진이승엽1344개1995~2003
2012~2017
병살타박한이156개2001~2019

9.2.2. 단일시즌[편집]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단일시즌 1위 기록.

삼성 라이온즈 투수
부문이름기록시즌
등판경기임창용71경기1999
임현준2019
선발 등판김진웅31경기1999
팀 아델만2018
완투김시진17경기1983
완봉김시진5경기1983
평균자책점김시진2.001985
승리김시진25승1985
김일융
패전이선희13패1983
김진웅1999
윤성환2019
백정현2022
세이브오승환47세이브2006
2011
홀드안지만37홀드2015
이닝김시진269⅔이닝1985
피안타김성길219개1989
피홈런장원삼29개2015
탈삼진김시진201개1985
사사구김시진136개1985
볼넷김시진121개1985
몸에 맞는 공임창용24개2002

삼성 라이온즈 타자
부문이름기록시즌
타율장효조.3871987
출루율장효조.4751983
장타율이승엽.7331999
타석박해민649타석2018
타수박해민576타수2018
안타최형우195개2016
2루타최형우46개2016
3루타구자욱13개2016
홈런이승엽56개2003
타점이승엽144타점2003
최형우2016
득점이승엽128득점1999
도루박해민60개2015
사사구이승엽124개1999
볼넷이승엽112개1999
몸에 맞는 공박석민27개2012
삼진구자욱138개2017
병살타김한수23개2004
무안타김헌곤43타석2022


9.2.3. 타이틀 홀더[편집]



9.2.3.1. 타자[편집]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격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장효조외야수.369
1984이만수포수.340
1985장효조외야수.373
1986장효조외야수.329
1987장효조외야수.387
1993양준혁1루수.341
1996양준혁외야수.346
1998양준혁지명타자.342
2016최형우외야수.37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출루율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장효조외야수.469
1984장효조외야수.422
1985장효조외야수.460
1986장효조외야수.436
1987장효조외야수.461
1988김성래2루수.459
1993양준혁1루수.436
1998양준혁지명타자.450
1999이승엽1루수.458
2006양준혁지명타자.44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장타율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장효조외야수.618
1984이만수포수.633
1987이만수포수.579
1993양준혁1루수.598
1996양준혁외야수.624
1998이승엽1루수.621
1999이승엽1루수.733
2002이승엽1루수.689
2011최형우외야수.617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다안타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장효조외야수117
1996양준혁외야수151
1997이승엽1루수170
1998양준혁지명타자156
2002마해영지명타자172
2003박한이외야수170
2016최형우외야수19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홈런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이만수포수27
1984이만수포수23
1985이만수포수22
1987김성래2루수22
1993김성래1루수28
1997이승엽1루수32
1999이승엽1루수54
2001이승엽1루수39
2002이승엽1루수47
2003이승엽1루수56
2007심정수외야수31
2011최형우외야수30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점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83이만수포수74
1984이만수포수80
1985이만수포수87
1987이만수포수76
1993김성래1루수91
1994양준혁지명타자87
1997이승엽1루수114
1999이승엽1루수123
2002이승엽1루수126
2003이승엽1루수144
2007심정수외야수101
2011최형우외야수118
2016최형우외야수144
2017러프1루수124

삼성 라이온즈 역대 득점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1998이승엽1루수100
1999이승엽1루수128
2000이승엽1루수108
2002이승엽1루수123
2003이승엽1루수115
2006박한이외야수89
2021구자욱외야수107
2022피렐라외야수102

삼성 라이온즈 역대 도루왕
연도이름포지션기록
2014김상수유격수53
2015박해민외야수60
2016박해민외야수52
2017박해민외야수40
2018박해민외야수36

9.2.3.2. 투수[편집]

삼성 라이온즈 역대 다승왕
연도이름기록
1985김시진25
김일융
1987김시진23
2004배영수17
2009윤성환14
2012장원삼17
2013배영수14
2021뷰캐넌16

삼성 라이온즈 역대 평균자책점왕
연도이름기록
1999임창용2.14
2002엘비라2.50
2014밴덴헐크3.18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탈삼진왕
연도이름기록
1985김시진201
1993김상엽170
2005배영수147
2014밴덴헐크180
2015차우찬194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세이브왕
연도이름기록
1982황규봉11
1985권영호26
1999임창용38
2004임창용36
2006오승환47
2007오승환40
2008오승환39
2011오승환47
2012오승환37
2015임창용33
2021오승환44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홀드왕
연도이름기록
2006권오준32
2009권혁21
2015안지만37

10. 지역 연고 학교[편집]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에 3개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대구경북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들도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 1차지명이 있던 시절에는 강원도 영동 지역[130]강릉고등학교, 설악고등학교까지 삼성이 우선 지명권을 가진 적이 있었다.

참고로,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 2003년 창설, 2009년 해체되었다. 홍효의, 추승민 정도가 있지만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 사례는 없다.
대건고등학교 : 1970년 창설, 1977년 해체되었다.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권영호, 박승호, 허규옥, 장태수가 있으며, 해체 당시 선수들은 모두 충암고등학교로 전학가 충암고의 우승멤버가 되었다. 이 때 충암고의 우승 멤버가 된 대건고의 마지막 멤버가 조범현이다.
성광고등학교 : 1981년 창설, 1989년 해체되었다. 유명 선수로는 이상목이 있다.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같은 재단의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됨.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문서 참조.


11.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12. 이야깃거리[편집]






13. 관련 문서[편집]




14. 둘러보기[편집]






[1] 대구 사무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2] 서울 사무실, 삼성화재 역삼빌딩 20층[3] 2014년부터 삼성 내의 프로 스포츠단을 인수하기 시작해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4] 리그 연고지 제도 개편으로 인한 경북 연고 소멸일 뿐, 1차 지명 권한이 날아간 건 아니다. 현재 1차 지명 권한은 대구/경북/강원영동[5] 최대 29,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6] 전,후기 리그 통합우승. 다시 말해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니다.[7] 단일 리그 기준. 페넌트 레이스 KBO 최다 우승 구단이다.[8] 전기, 후기 리그[9] 전기, 후기 리그[10] KBO 포스트 시즌 최다 진출 구단이다.[11] 다른 하나는 롯데 자이언츠.[12] 양대 리그, 전·후기 리그 기록까지 포함할 시 17회.[13] 사실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다면 19회 연속 기록도 달성할 수 있었다.[14] 보통 한국에서의 시리즈는 "가을야구"라고 명칭되며, 페넌트레이스에서 1~5위까지의 성적을 낸 팀들 간에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본래 시리즈의 의미는 각기 다른 리그간의 우승팀끼리 진정한 우승팀을 가리는 단기경쟁을 가리킨다. 야구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양대리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MLB 안에 있는 아메리칸리그네셔널리그의 각 우승팀이 최종우승을 가리기 위해 치루는 단기전을 치루는데, 이것이 바로 월드시리즈이다. 그러나 한국은 단일리그이며, 따라서 본래 취지의 시리즈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15] 롯데 자이언츠보다 약간 진한 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리 블루에 더 가까운 색.[16] 로열 블루나 코발트 블루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17] 정용진이마트가 아니라, 정유경신세계백화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신세계그룹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다.[18]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19]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2001년 기아자동차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를 출범시킨 이후에도 현대자동차현대 유니콘스 지분을 유지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선례가 존재한다.[20]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 등.[21] 아무리 야구단이 적자를 본다고 해도 지분 67.5%를 6억 7천만 원에 시장에 내놨다면 아파트를 팔고 빚을 내서라도 살 국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계열사 간의 거래였기에 가능했던 일.[22] 17, 18, 19시즌 문서 FA 계약란 참조.[23] 마스코트 엠블럼을 메인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24] 꽹과리 아줌마가 라팍에서 아직도 이 로고가 박힌 깃발을 흔든다.[25] 이승엽 야구장으로 명칭이 바뀔 뻔 했으나 무산되었다. 현재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시관과 사회인야구장으로 활용된다. 바로 옆에 대구 FC의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있다.[26]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포항구장을 쓰지 못하다가 2022년 7월 26일부터 3일간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을 치르며 포항 경기의 역사를 이어갔다.[27] 롯데 자이언츠의 제2구장인 문수 야구장은 2014년에 지어졌지만 제1구장인 사직 야구장이 1986년 개장했다. 아울러 한화 이글스는 제1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제2구장인 청주 야구장이 모두 20세기에 지어졌다.[28]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 경북 출신이었다.[29] 대구, 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30] 정확한 총 관중 수가 62만3970명이고 평균 관중이 무려 9904명에 달했다. 이는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이고 1995년의 평균 좌석 점유율이 무려 76.2%에 달했다. 외야 관중석 일부를 빼고는 빈자리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31] 그리고 그 10,000석조차 2010년대에는 9,200석으로 줄어들었다.[32]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가면서 더더욱 심해졌었다.[33] 라팍과 경산 시내 간의 거리가 대구 구 도심 또는 성서지역 간의 거리보다 더 가까우며, 경산 시내 지역은 심지어 대구 도시철도 2호선으로 라팍과 연결되어 있다.[34] 특히 밀양시는 대구와 부산, 창원 모두 가까워서 롯데 자이언츠NC 다이노스의 팬들도 많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야구 팬덤이 많이 갈린다.[35] 이들은 1980-90년대에 삼성 골수팬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들이고, 그들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어서 당연히 좋아할 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정점을 찍었는데 요미우리 경기 시청률이 훨씬 높았다.[36]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풍이 10개 구단들 중 가장 강력하다.[37] 군인 팬들도 있는데, 공군에서도 제11전투비행단, 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많이 보러 간다. 부대에서도 야구 이야기 하면 삼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38] 일명 대구아재로 불리는 중년 남성 팬들이다. 이들은 팬서비스보다 성적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39] 2016~2020년의 일명 99688 기간은 구단 40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어서 특히 과거 명문 이미지에 익숙하던 팬들은 현타가 오기 쉬웠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지방구단이 관중 수가 중간은 갔다는게 위안거리.[40] 전상일 기자가 이를 두고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41] 다만, 이로 인하여 KBO 리그를 통틀어 무능함의 끝을 보여준 단장인 홍준학이 유임될 것이라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시즌 중반 홍준학이 사퇴하며 없는 점이 되었다.[42] 이런 분위기는 2010년대 후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졌다.[43] 삼성 라이온즈는 전체적으로 봐도 남성팬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시꺼먼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44] 사실 구단이 일부러 이러한 팬들 확보를 위해 뛰어든 것이 아니라 직관을 가지 않는이상 TV중계로만 야구를 접하던 시대에서 점차 핸드폰이나 SNS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45] 구자욱이 야수 중에 고참급이지만 93년생으로 젊은편이다.[46] 심지어 마케팅 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실 이 사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서 일어난 거다. 왕조시절 성적이었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재팬들은 성적이 장땡이기 때문이다.[47] 다만 이는 시민야구장과 라이온즈파크의 수용 인원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48] 당장 2018~2021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49] 오죽하면 7월에 와서는 심각한 부진이 연이어 계속되자 트럭 시위까지 열렸을 정도였다. 사실 이는 부진한 성적을 규탄하는 성격도 있었지만 특정 선수를 고집스럽게 기용하는 감독에 대한 항의성이 더 짙었다.[50] 1,2위는 각각 SSG,LG로 순위와 일치한다.[51] 이들 중에는 도박 사건, 우승 실패라는 대형 악재가 겹친 2015년부터 야구를 멀리하고 있다가 팀이 2021년에 반등하자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돌아온 바로 다음 시즌에 팀이 다시 침체에 빠졌으니 좋게 볼리가 없다.[52] 정작 홍준학 단장은 팬들을 보는 시선이나 운영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지 티켓값을 유지시키고 포퓰리즘적인 운영을 하는 등 라이트 팬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53]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시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54]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55]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56]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57] 유담도 삼성팬이다.[58] 평소에는 빨간 하트를 남발하지만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파란색 하트를 쓴다.[59] 삼성은 그날 연장전 패라는 혈압오르는 경기력을 보였다. 덤으로 그담날과 다다음날 시구는 올림픽 출전한 TK출신인 원래 시구자들이 각각 스케줄경북대학교병원 입원 때문에 나가리행.[60] 영상[61] 사실 원래 지역구는 옆 지역구인 수성구 을인데 21대 총선 때 옆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겨 당선되었다. 참고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수성구 을 지역구 의원 출신이자 현직 대구시장홍준표NC 다이노스의 팬이라고 한다.[62] 상술된 내용처럼 이 무렵부터 성적과 상관 없이 야구 경기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난 것도 한 몫을 했다.[63]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시절 이학주의 응원가와 일명 '짭도라도'로 불린 팀 응원가 '승리를 위해'.[64]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의 대들보였던 노숙희 놀레벤트 팀장, 2010년대 쌍두마차 중 한 명이었던 이연주 전 치어리더도 대구 출신이다. 현재 팀장인 이수진 치어리더는 구미시 출신.[65] 대구, 경북지역 행사에도 놀레벤트 소속 치어리더들이 많이 참여한다.[66] TK 출신 치어리더들이 타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2016~17년에 블루팅커스로 활동하던 서유림 치어리더가 한화로, 2018~19년에 활동하던 박현영 치어리더가 SSG로 이적한 사례가 있다.[67] 양 팀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수원"과 "삼성"에 대응한다. 실제로 수원에도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영향으로 인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뿐만 아니라 과거 전 연고였던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의 팬들이 존재한다.[68] kt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지만 상대전적은 삼성이 압도우위이다. 작년에는 삼성이 kt에게 압도적으로 썰린 것과는 정반대.[69] K리그1에 존재하는 현대가 더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울산 현대의 모그룹 HD현대(舊 현대중공업그룹), 삼성 라이온즈의 모그룹 삼성그룹과 SSG 랜더스의 모그룹 신세계그룹은 엄연히 다른 기업이지만 나란히 창업자가 똑같고 현재도 기업 총수 간의 친인척 관계(정의선-정몽준, 이재용-정용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70] 라이온즈의 역대 투수 중에서는 김시진, 임창용, 오승환, 배영수 정도가 팀 레전드로 꼽힌다. 현재 영구 결번의 가능성을 엿볼 만한 투수가 있다면 오승환의 21번 정도일 것이고 상황에 따라선 상징성의 김시진의 29번과 리그 올타임급 성적의 임창용.[71] 다만 구단과 좋은 모양새로 헤어지지 못하고 방출된지라 은퇴식은 치르진 않았다.[72] 은퇴 시점 통산 9개 부문 1위.[73] 구단주 취임 당시는 삼성그룹 부회장이었고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망 이후 회장이 된다.[74] 이병철의 넷째 사위이며 이건희와는 매형-처남 관계였다. 자세한 인물 이야기는 범 삼성가 항목 참조.[75]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76]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77]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78]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79]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힌 적이 있으나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80]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81]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김계현의 아들.[82]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83] 1999 시즌이 끝나고 취임. 상무보에서 시작해서, 2002년 1월 상무, 2005년 1월에 전무로 승진했고, 2009년 12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 12월에 용퇴했다.[84]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이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85]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86] 야구인 출신으로는 2대 단장을 맡았던 실업야구 출신 김삼용 단장이 있었다.[87]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88] 조창수 감독대행 성적 포함[89]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90] 서정환, 선동열,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은 삼성 팬덤에게 상당한 졸장으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인지 재임 기간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응용, 류중일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기도 하다.[91]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92]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93]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94]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95]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96]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97]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98]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99]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종범까지 위에 언급한 양준혁처럼 은퇴시켜 버렸던것도 안티가 많아지게 된 원인중 하나다.[100] 그나마 허삼영 정도가 평가가 최악은 아닌 정도이지만, 팀 역사를 통틀어서 낮은 평가를 받는 선동열이나 김성근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보기도 힘들다. 나머지 둘은 단순히 삼성을 넘어서 타 팀 팬덤도 근 몇 년간 KBO 리그에서 상당히 무능했던 감독을 언급할 때 끼워주는 편일 정도로 평가가 좋지 않다.[101] 당시 규정상 전후기 모두 1위 차지하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 우승이었다. 그 해 준우승은 삼성 제외 팀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102] 그러나 1985년과는 달리 통합 우승은 하지 못했고 2위팀간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과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해야 했다.[103] 이 기록은 팬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록 중 하나다. 원년팀인 삼미부터 청보 태평양 현대가 한 역사로 묶이는 만큼 12년간 현대 유니콘스가 존재할때 최하위를 한적이 없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삼청태는 모두 최하위를 해봤다. MBC 청룡의 경우에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존재한 팀이라, 전기리그 꼴찌(전후기 통합 승률은 꼴찌에서 2등)를 해봤고, 해태 타이거즈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꼴찌를 안 했지만, 양대리그 시절 드림리그 꼴찌를 했다.[104] 2015년부터 1군 리그에 참가한 KT가 3년연속 10위로 최하위를 가져가준게 그나마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105] 전력이 약한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가 1군 리그 참가 첫 시즌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하위를 기록하지 않았으나 결국 2018년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삼성이 유일한 정규시즌 최하위 미기록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106]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 2021년 9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통산 2700승을 달성하여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107]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108] 참고로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이 2016-2023시즌 8개 중 오직 2021시즌만 진출하고 나머지 시즌 모두 하위권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횟수 1위이다. 참고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은 두산 베어스가 맹추격하고 있으나 아직 25회로 삼성과 동률이라도 되려면 최소한 4년이 더 걸린다. 그리고 두산 역시 김태형이 나가고 난 뒤에는 고정 가을야구가 애매하다.[109]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홈런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110] 17회로 리그 최다. KBO는 창단 42년이 되었으므로 2년반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 게다가 이것도 2010년대 후반부터 말아먹어서 그렇지 2015년까지는 2년 중 한 번 진출 꼴이었다.[111] 같은 기간동안 KIA가 중위권-중하위권이라면 삼성은 하위권으로 분류된다.[112]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지상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까지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정도였다.[113] 2위는 두산 베어스의 8회.[114]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회로 역시 2위다.[115]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제대로된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116]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7 대신 V6(+1)이라는 문구로 19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 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117] 보통 최고의 한국시리즈로는 최동원의 1984년, 역전 백투백 2002년, 수중 혈투 2004년을 꼽는다. 참고로 3시리즈 모두 삼성이 출전.그리고 두 번 졌다[118]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119]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라는 투수가 허용하였다.[120] 이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당시 선동열 감독. 별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2015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이 된다.[121] 물론 와일드 카드 제도가 생기기 전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122] 포스트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시리즈에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123]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124]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삼성 야구를 본 삼성 팬들.[125] 여기에는 선동열의 야구 스타일이 삼성 특유의 장타 위주의 화끈한 빅볼야구 대신 1점 내고 한 점도 안 내주며 최대한 투수진을 쥐어짜내 승리하는 스몰볼야구 스타일인 것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선동열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했을 당시에도 삼성의 골수팬들에게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이후 2009 가을야구 실패 및 2010 시즌 양준혁 강제 은퇴 및 베테랑 홀대, 한국시리즈 셧아웃 패배로 경질되면서 우승감독임에도 금지어로 불릴 정도로 선동열의 이미지는 삼성팬들에게 매우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삼성의 시스템이 선동열을 우승시켜준거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126] 정작 비슷하게 2000년대 후반 왕조 시기를 경험한 SK는 왕조시기를 구축한 김성근을 경질하고 난 이후 이만수 감독체제(정확히는 감독대행 시절도 포함)에서 한국시리즈 2회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김용희 감독체제에서 3년만의 가을야구 진출 성공 및 정경배를 기용하여, 스몰볼 야구 스타일이 아직 남아있던 SK를 빅볼야구 스타일로 자리매김 하는데 기여하여 힐만감독 체제에서 8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등극하는 등, 왕조 시기에 내려와서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었다.[127] 삼성 라이온즈 외에 현대 유니콘스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있었지만 현대는 2007년 팀이 해체되었다.[128] 이외에 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도 현대 유니콘스와 대결한 역사가 있으나,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은 적이 없다.[129] 한미일통합으로는 522세이브다 [130] 영동 지역(강릉시강릉고등학교, 속초시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131]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132] 이후 도쿄 야쿠르트의 발렌틴이 경신했다.[133]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134]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135]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을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136]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wiz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137]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 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 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138]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139]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140]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141] 박해민은 서울 토박이로 영중초, 양천중, 신일고,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전부 서울에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리그에서 우수타자 상을 받았다.[142] 의외로 이 계보는 90년대 해외파 선수로 삼성 역사상 당당히 흑역사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최창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창양은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143] 왕조 당시만 해도 김상수 한 명 사인 받았으면 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면 투수조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는 확실하다.[144]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145]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146]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147]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148] 이 역시 삼성.[149] 이를 이룬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150]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151] 2020년이 돼서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kt는 그렇다 치더라도, NC는 역사에 비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음에도 삼성과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이는 NC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암흑기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삼성과 NC가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4시즌과 15시즌에도 직접 맞붙지는 못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삼성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13,21) NC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 (16~17,19~20,23) 둘 다 떨어졌다(18,22).[152]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153]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154] 다만 자진사퇴가 공식적으로 수리된 것은 5월 10일이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조계현 수석코치가 사실상 감독대행 역할을 했으니 삼성이 보낸게 맞다.[155] 후술한 수베로 감독과 함께 유이하게 삼성을 이기고 감독이 교체된 경우[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154], 2016년 10월 8일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155],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 2021년 5월 9일 대구 삼성전 6:8 패배 이후 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 2023년 5월 11일 대전 삼성전 4:0 승리 이후 한화 수베로 감독 경질.[156] 아이러니하게도 양준혁 역시 선수 시절 중간에 해태-LG로 트레이드됐다가 돌아오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고, 은퇴하는 모습도 당시 감독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 은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게 좋은 결말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아예 은퇴식조차 안 열어주고 방출시켜버린 이만수와는 달리 은퇴경기라도 성대히 열어줬다.[157] 삼성 구단 창단 후 첫 은퇴식의 주인공이고, 은퇴 후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성골 그 자체의 모습이다.[158] 2003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로 일하던 이만수에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했고, 이에 이만수는 즉시 화이트삭스에 사표를 낸 뒤 미국에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발권해뒀다고 한다. 그런데 돌연 삼성 쪽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붕 떠버릴 뻔했고, 그나마 이러한 사정을 들은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재계약을 해줘서 다행히 잘 풀렸지 하마터면 삼성 때문에 지도자 경력마저 망칠 뻔했다.[159] 물론 이승엽은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미지가 어느정도 희석된 덕분에 이 문단에 적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은 편이다.[160] 단 1999년 이전에는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94~6년에는 삼성의 556 암흑기와 맞물려 3연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1996년 현대와의 경기는 신인 외야수 장정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데다가 정명원이승엽의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끝에 패배하며 역대 6월 2일 경기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161] 2012년 두산과의 막장 경기 끝에 5할 승률을 기록, 2013년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의 기적 끝에 승리, 2015년 롯데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안지만의 150홀드 기록, 2017년 KIA전 최충연의 첫승, 2020년 LG전 원태인의 무실점 투구, 2021년 SSG전 난타전 끝에 김지찬의 공수 맹활약으로 승리 등[162] 고졸 3년, 대졸 2년[163] 물론 평균 신장이 큰 편에 들어가는 수도권 지역과 1~2cm 정도 차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다.